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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춘추4 류대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7-07 11:24:50       조회수 : 412 파일 :

 


돈翁 柳公(諱, 連)의 無憫齋記



                                                             文化柳氏 忠/少 醒谷公宗中 總務 柳大杰





무민재기(無憫齋記)

 

문화류씨 돈옹 류연(文化柳氏 돈翁 柳連)의 묘재(墓齋)이다. 요대동에 있다.

 

옛날 선조조(宣祖朝)에 나의 종선조(從先祖) 돈옹공(돈翁公)이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으로 있다가 벼슬길에서 자취를 감추고 무주(茂朱) 금리(錦里)로 들어왔다.

그는 돈세정(돈世亭)을 짖고 돈옹(돈翁)이라 자호(自號)하고 소요하며 한가롭게 지내다가 생을 마쳤다. 인묘조(仁廟朝)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무주읍 요대동 술좌(戊座) 언덕에 장사지냈다.

올해 3월에 후손들이 재물을 모아 묘소 아래에 재사(齋舍)를 세울 것을 도모하고무민재(無閔齋)라 이름하였으니 공(公)의 당시의 뜻을 취하여 올린 것이다.

군자의 출처(出處)와 행장(行藏)은 오직 그때에 맞게 할 뿐이다. 지금 공이 계실 때를 살펴보면 위로는 명군(名君)이 있어 큰일 도모할 수 있고 또 조정에는 현명하고어진 군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공의 표연하게 멀리 떠나 세상에 은둔하면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어째서인가?

어찌 세상을 잊는 것에 과감한 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미 그렇게 한 것으로논한다면 공은 미리 광해군(光海君)의 무도함에 헤아리고 있었던 듯싶다. 만약 머뭇거리면서 벼슬에 연연하여 물러날 것을 결단하지 못한 채로 그럭저럭 지내는 사이에높은 지위에 올라 고명(顧命)의 반열에 참석하게 된다면 사군(嗣君)의 낭패를 직접눈으로 보고서 물러나려고 해도 물러나지 못하고 반드시 화가 자신에게 미치게 될것이니 차라리 기미를 보고 일찍 물러나 초연하게 화를 면하고 명칠보신의 도를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한 것이다.

공의 뜻이 과연 여기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이로 보나 저로 보나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고 물러나는 것을 쉽게 한다는 절개에 매우 부합하고 군자가 수신하는 떳떳한 법이 되니 후손들이 마땅히 우러러 사모할 바이다. 그리하여 지금 무민재(無閔齋)의 기문을 쓰면서 감히 부연하여언급하니, 후대에 현자가 혹시라도 묵묵히 이해하고 그의 참람된 행동을 용서하는자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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