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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전이갑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8-02 15:54:28       조회수 : 628 파일 :

 

 

 

고려개국공신 태사 충렬공 전이갑 순절비



【내용】

이 순절비는 팔공산집단시설지구 공원관리사무소 앞쪽 근처에 있다. 규모가 큰 비석이며, 전면에 고려 개국공신 태사충렬공 전공이갑 순절비(高麗開國功臣 太師忠烈公 全公以甲 殉節)라고 적혀 있고, 측면과 뒷면에 1985년 봄에 대한민국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박영석(朴永錫)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전이갑(全以甲)은 동생 전의갑(全義甲)과 함께 927년(태조 10)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공을 받은 신라를 돕기 위해 왕건(王建)과 함께 출전하였다. 견훤군과 팔공산에서 만나 격전 중 왕건이 위급하게 되자 전이갑은 신숭겸(申崇謙), 김낙(金樂) 장군 등과 의논하여 왕건을 탈출시키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고려태조 왕건이 전의갑을 시중 개국공신 충강공(侍中 開國功臣 忠康公)으로 봉하였다. 1692년(숙종18)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하신리 신촌에 전의갑, 전이갑 형제를 배향하는 도계서원(道溪書院)이 건립되었으나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1869년(고종6) 훼철되었다. 1838년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이 전의갑, 전이갑 형제를 추모하기 위하여 한천서원(寒泉書院)을 창건하였다. 조정에서 한천서원에 숭절사(崇節祠)란 사액을 내렸으나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9년 복원되었다. 1800년에 북구 도남동에 전의갑, 전이갑 형제를 기리는 도남재(道南齋)가 세워졌다.




표충사(表忠祀) 표충재(表忠齋)

소재지 동구 신검17 (지묘는 526)



【내용】

신숭겸장군유적지는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으로, 1981년 7월1일 대구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신숭겸 장군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 유적지는 문중에서 관리·운영을 맡고 있다. 신숭겸은 827년(고려 태조10)에 신라를 침공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하여 왕건과 함께 출전하여 공산(公山)에서 싸웠으나 후백제의 군사에게 포위를 당하여 5000명의 군사들이 전멸의 위기에 처하자 왕건을 살리기 위하여 신숭겸이 왕건으로 위장을 하고 싸울 때 왕건은 단신의 몸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투에서 신숭겸은 전사하였으며 그의 시신은 춘천에 매장되었으며 그가 전사한 이곳에 단을 쌓아 표충단을 만들었다.


신숭겸의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신능산(申能山), 평산(平山) 신씨(申氏)의 시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곡성현(谷城縣) 출신으로 태조(太祖)가 평산에서 사성(賜姓)하였다고 하고,『고리사, 열전(列傳)에는 광해주(光海州:지금춘천) 사람이라 하였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 인물조에 그의 이름이 실려 있으며, 또한 그의 묘가 춘천에 있는 것 등으로 보아,본래 곡성 출신으로 뒤에 춘천에 옮겨와서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몸집이 장대하고 무용(代用)이 뛰어나 궁예(弓裔) 말년에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해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봉해졌다. 태조 즉위 후 7, 8년 동안 소강상태였던 후백제와의 긴장관계는 견훤(甄萱)이 신라를 공격함으로써 악화되있다. 927년 견환이 고울부(高鬱府:지금의 경상북도 영천)를 습격하고, 신라를 공격해 경애왕(景哀王)을 죽이고 갖은 만행과 약탈을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태조는 크게 분개해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조제(弔祭)하는 동시에 친히 정기(精騎) 5천을 거느리고 대구의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맞이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태조가 위급하게 되었을 때, 대장(大將)이 되이 원보(元甫) 김락(金樂)과 더불어 힘써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태조는 신숭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해 시호를 장절(壯節)이라 하였다. 또한 아우 신능길(申能吉)과 아들 신보(申甫)를 모두 원윤(元尹)으로 삼고, 지묘사(智妙寺)를 창건해 그들의 복을 빌게 하였다. 994년(성종 13) 1월에 태사(太師)로 추증되어 개국장절공(開國壯節公)으로 태묘(太廟)의 태조 사당에 배향(配享)되었다. 신숭겸의 행적을 기록한 평산신씨장절공유사(平山申氏壯節公遺事」에는 1120년 예종이 신숭겸과 김락을 주도하며 지었다는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항가가 전한다. 


대구의 충효비와 정려각에서 拔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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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 송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