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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 송은석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7-29 14:21:23       조회수 : 555 파일 :

 

충정공 박팽년 선생과 묘골,육신사 이야기

2017년 11월 10일 발행

글 송은석

 

 

귀신 없단 소리 못한다. 묘골 육신사



앞서 `묘골·묘골·묘골`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다. 이번 이야기는 이 묘골묘골·묘골` 스토리 중 하나인 `묘(廟)골`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마을에사육신을 모신 큰 사당이 있어 마을이름을 `묘골`이라고 했다는 그 스토리 말이다.앞서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여기에서 한 번 다루어보기로 하자.

(1) 꿈에 사육신이 나타났다.

사육신 중 유일하게 직계 혈육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560년 세월을 대를 이어 번창해온종중이 있다. 바로 박팽년 선생의 직계 후손인 순천 박씨 충정공파이다. 대구권에서는이 종중을 별칭으로 `묘골 박씨`라 칭한다. 세상에서 양동마을의 이씨를 `양동 이씨`,하회마을의 류씨를 `하회 류씨라 하듯이 순천 박씨 중에서도 충정공파 [박팽년 직계]를 특별히 `묘골 박씨`라 칭하는 것이다.이는 묘골 박씨 종중(宗中)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존경심의 표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묘골 박씨 스스로 자신들이 사육신 박팽년(朴彭年) 선생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사육신 사건 당시 박팽년 선생의 유복손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날있던 박일산, 그는 슬하에 외아들 박연손(朴連孫)을 두었다. 박연손은 다시 박계창과 박필종(朴必種) 두 아들을 두었으니, 이들은 박팽년 선생의 현손(玄孫)이다. 이중 장손(長孫)인 박계창(朴繼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450년전, 그가 꾸었다는 꿈 이야기가 이번 이야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박계창이 꾸었다는 꿈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줄거리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은 자신의 외가인 묘골에 99칸 증택을 짓고 정착했다. 이후 박팽년의 증손인 박연손을 지나 현손인 박계창에 이르렀으니 때는 선조 임금 시절이었다. 하루는 박계장이 꿈을 꿨다. 꿈속에서 자신의 고조부인 박팽년의사당 문밖에서 몰골이 초췌한 다섯 분의 선비가 서성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다가가 누구인지를 물으니 각각 “성삼문·이개, 류성원, 하위지, 유응부”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박팽년 저 친구는 손자를 남긴 탓에 기일날 밥이라도 챙겨먹는데, 우리는 배가 너무 고프다네. 배가 너무 고파.” 하더라는 것이다. 꿈에서 깬 박계창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자신의 고조부인 박팽년의 제삿날이었기 때문이다.

아! 우리 고조부님과는 달리 저 다섯 분의 어른은 여태껏 제삿밥조차 얻어 자시지를 못하셨구나.`

그날부터 박계창은 자신의 고조부를 비롯한 다섯 분의 신위를 고조부 사당에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인근 성주의 큰 선비 정구(鄭述)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사가(私家)의 사당에서 여섯 분의 신위를 모두 받들어 모시는 것은 아무래도 예(禮)에 미안한 감이 있습니다. 만약 여섯 분의 제사를 다 받들고 싶다면 기존의 고조부 사당은 그대로 두고 별묘(別廟)를 하나 세워 사육신 여섯 분을 별도로 모시는 것이 예에 옳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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