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彰 烈 祠 紀行 류두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1-18 15:29:45       조회수 : 390 파일 :

所在地  忠南 扶餘郡九龍面 금사리519
                             忠南道 記念物 第23號
(一) 머리말.


扶餘郡은 扶蘇山과 고란사 및 白馬江, 百濟의 三千宮女들이 몸을 던져 나라와 運命을 함께한 곳인 落花岩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래전에 觀光次 와본 곳이기는 하나 금사리는 처음이라 알지 못하여 택시를 이용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요금이 3만8천원이나 나오는 시골 벽촌이었다.
택시기사도 扶餘토박이기는 하나  이곳은 처음 와 본다고 했다. 돌아 갈때를 생각하여 택시는 빈차로 돌아 갈 것이니 料金을 많이 받지 말고 이용하기를 청하니 4만원만 주세요 하기에 응락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택시기사와 같이 祠堂을 두루 살펴보기로 했다. 管理舍나 管理人은 없고 三門은 열려 있었다


(二) 彰烈祠
本 祠宇는 야산 끝자락에 자리했는데, 周圍는 農耕地들이고 祠宇 가까이 작은 農家한집이 있었는데 문은 잠겨 있었다. 먼저 祠堂앞 進入路에 大型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案內板도 있기는 했으나 너무나 簡略한 內容뿐이다.
公은 丙子 三學士中 한분이고 肅宗43年 丁酉(1717)때 忠淸道 儒林들의 上疏로 本 祠堂이 建立되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어떤 연유로 公의 祠堂이 이곳에 세워 젔는지 알 수 없었다. 三門 안쪽에는 크지 않은 講堂이 있었는데 內部의 四面壁에는 크고 작은 懸額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講堂안쪽 약간 높은 자리에 祠堂이 있기는 하나 문이 잠겨 저 있어 내부는 볼 수 없었다. 庭園 곳곳에 雜草가 무성한 것으로 보아 管理人이 없는 것 같다. 敷地도 넓지 않고 三門까지 합쳐 三個棟의 建物이라 둘러 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三) 諡 忠貞公 閏集 事蹟.


公의 事蹟은 지난 2014年4月初旬의 忠節祠 紀行文에서 公의 記事를 援用하고 以下는 略한다. 文獻에 의하면 公이 配享된 곳은, 本 祠堂外에도 忠節祠를 비롯하여 江華島의 忠烈祠 및 京畿道 영천의 장암사 등 5개 書院 또는 祠堂에 配享되셨다고 한다. 생각컨대 여러 곳에 配享으로만 끝내지 말고 配享되신 곳의 管理와 淨化가 잘되어지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四) 끝 맺음


今年 四月初頃 京畿道 廣州所在 南漢山城內의 忠節祠를 紀行하고 仁祖朝의 丙子 三學士 (諡 忠正公 洪翼漢, 諡 忠烈公 吳達濟)와 함께 敵國에로 끌려 가셔서 그들의 酷毒한 拷問으로 極刑을 받아 그곳에서  돌아가신 三忠臣을 配享한 祠堂으로는 너무나  狹小하여 초라하고 허술한 管理 狀態를 보고 紀行後感마저 많이 서글펏고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었는데, 지금 새삼스럽게 當時의 記憶이 떠오른다. 같은 뜻으로 이곳 彰烈祠도 먼 시골 한적한 곳에 자리 했으며 境內는 넓지도 않았는데 雜草가 茂盛하게 자랐고 각 建物들도 모두 退色된 狀態였다. 더하여 자세한 內容 說明마저 없으니 찾아온 보람도 없고  虛行한 것 같아 마음마저 편치 못했다. 이는 내가 할 말은 아니나 文化財 管理當局 또는 그 後孫들의 積極的인 關心으로 나라에 忠臣들께서 配享되신 祠宇답게 管理 및 淨化가 잘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리오! 이상 拙稿를 마친다.
       

 


 歲  甲午 2014年 9月 16日    大邱宗會 常任理事 淸泉  斗  烈 拔萃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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