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육신사 기행 류성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8-18 11:36:30       조회수 : 476 파일 :

 

 

육신사 기행(六臣祀 紀行)


대승공 32세 류성열 (현) 대구종회 회장 2021,8,18

 

오늘은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육신사로 늙은 똥차의 핸들을 돌렸다.

여기도 집과 거리가 멀지않아 가끔씩 오는 곳이라 새로운 감흥(感興)은 없지만 나도모르게 저절로 발길이 닿는곳 중 한 곳이다.

마을 입구에는 충절문(忠節門)이 도로 가운데 우뚝 지키고 있고 육신사기념관이 현대식 한옥으로 깔끔하게 지어져 오는 객(客)을 맞이 한다. 

육신사 길로 접어들면 박팽년(朴彭年) 후손 순천박씨(順天朴氏) 집성촌(集姓村)이다. 마을 전체가 한옥으로 잘 꾸며진 예쁜 마을이라는 느낌이 든다. 고택(古宅)이 아니라 예스런 느낌은 없어도 잘 정리되었다는 생각이 난다. 육신사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육신사 현판(懸板)이 달린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서 수련 꽃이 피어있는 작은 연못을 지나 이끼낀 돌께단을 오르면 홍살문(紅門)을 지난다. 넓지않은 잔디 마당에 거북 등 위에 우뚝 선 사육신(死六臣)의 육각형 비석(六角形 碑石)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육신의 위패(位牌)가 모셔진 숭정사(崇正祀)로 들어가는 성인문(成仁門)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 

그 옆으로는 태고정(太古亭)과 도곡재(陶谷齋)도 있고 반대편에는 헌성금(獻誠金) 표지석(標識石)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

 

아! 여기가 충절(忠節)을 지키신 사육신(死六臣)의 사당(祀堂)이구나....

 

자료에 따르면 육신사는 박팽년(朴彭年)을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된 하빈사(河濱祀}에서 출발한다. 1679년(숙종5) 박팽년을 비롯한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성삼문(成三問), 류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를 위한 사당을 짓고 봉사(奉祀)하게 되었다. 1691년(숙종17) 별묘와 강당을 건립하고 도내 유생들의 소청으로 1694년(숙종20) 낙빈이라는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 서원(賜額 書院)이 되었다.흥선대원군 집권기에 훼철된 것을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1971년부터 육선생 추모사업 추진위원회가 조직되고 1974년부터 1975년 사이 충효위인 유적 정화사업에 따라 묘골 아름 마을 뒷산에 육신사를 만들어 사육신의 위패를 모셨다. 이 후 향사는 육신사에서 지낸다.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건물을 복원하였다.

 

전해오는 설(說)에 따르면 사육신 중 유일하게 자손이 살아남은 박팽년의 현손(玄孫)인 박계창이 기일에 맟춰 제(祭)를 모시던 중 한번은 사육신 여섯 어르신들이 함께 문 밖에 서성이는 꿈을 꾼 후로 여섯분을 같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문화류씨 충경공파 선조(先祖)이신 낭간(瑯玕) 류성원(柳誠源) 할아버지의 혼(魂)이 함께 쉴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순천박씨 묘골 문중에 다시금 고마움을 느낀다.

 

돌아오는 추계 향사에는 꼭 참석하여 제를 올리리라 다짐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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