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도동서원 기행 류성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8-16 10:12:07       조회수 : 434 파일 :

    도동서원(道東書院) 

 

 

 

 

 

 

 

 

 

      대구 달성 도동서원 소재지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 726번지

 

 

 

 

 

 

 

 

 

 

 

 

 

 

  

 


 

도동서원(道東書院)


대승공 32세 류성렬 (현)대구종회 회장 (2021년 8월 14일 紀行)


장기간의 코로나 때문에 나들이를 못한지도 오래되어 오늘은 주말이라 빗방울이 살짝 날리는데도 손자놈을 차에 태우고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도동서원으로 향했다. 몇번을 왔지만 올때마다 마음이 정화(淨化)되어 친근감이 들어 나는 좋은데 손자놈은 별로인지 시큰둥한 표정이다.입구에 주차를 하면 400년이 훌쩍 넘은 웅장한 은행나무가 보는 이들을 압도(壓倒)한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으로 더욱 감동을 준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뒷쪽에는 나즈막한 대니산 끝자락이 버티고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明堂)인 듯 하다. 도동서원의 정문(?) 한수조월(寒水照月) *차가운 강을 비추는 밝은 달*을 뜻하는 수월루(水月樓) 외삼문(外三門)을 지나 환주문(喚主門)을 들어서면 도동서원의 본채가 눈앞에 가득찬다. 그 옛날 이 곳에서 많은 유생들이 학문을 닦았던 중정당(中正堂)이 바로 강학(講學)의 영역(領域)이었으리라!


자료에 의하면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 자리한 도동서원은 문화재 지정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조선 5현(五賢)으로 문묘에 종사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향사한 서원으로 1568년 지방 유림에서 현풍 비슬산 동쪽 기슭에 세워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 불렀는데 창건 5년 뒤인 1573년(선조6)에 같은 이름으로 사액(賜額)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1604년(선조37)에 지방의 사람들이 지금의 자리에 사우를 중건하여 보로동서원(甫老洞書院)이라 불렀다.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동방도학지종(東方道學之宗)이라고 칭송했다. 1607년(선조40)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 사액(賜額)하였으며 마을 이름도 도동리라 고쳐 불렀다. 도동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전국 서원 중 철폐되지 않은 전국 47개 중요 서원의 하나로 사림과 후손들의 두터운 보호 아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문화해설사의 알기쉽고 재미있는 해설을 더 많이 듣고 싶었으나 손자놈의 투정 때문에 "다음엔 네놈과는 같이 안온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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